우리는 어딘가 다쳐서 아팠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많이 다쳤을 수록 많이 더 아플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례들은 손상의 정도와 통증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 1995년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29세 남성이 건물의 비계(scaffold)를 뛰어내려오다
널빤지의 17cm 대못을 밟아 구두를 뚫고 나왔습니다.
해당 남성은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고,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한 후
통증이 심해 펜타닐 정맥주사도 처방받았습니다.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 보다 100배 정도 진통 효과가 강한 성분입니다.)
이후 응급실 의료진들은 수술용 가위로 조심스레 구두를 제거해 나갔는데,
구두를 관통했던 못은 발가락 털끝하나 손상시키지 않은 채,
발가락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그는 손상 하나 없이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입니다.
2. 2005년 미국에서 어떤 남성은 갑자기 치통을 앓게 되었습니다.
6일이나 참았는데도 가라앉지 않자 치과를 방문하게 된 그는
X-ray를 통해 10cm 가량의 대못이 윗턱을 지나 두개골까지 관통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알고보니 6일 전 그는 자신이 일하던 공사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던 중
못을 박는 타정기를 잘못 사용해 자신을 향해 쐈던 것입니다.
(그는 와이프가 일하는 치과에 가기 전까지는
치통을 줄이겠다면 아이스크림만 먹어댔다고 합니다.)
못이 두개골까지 침범했지만 그는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고작 치통을 느낀 것입니다.
사례 뿐 아니라 실험실에서 참가자들을 모아 하는 실험에서도
통증의 정도와 손상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도 많이 있습니다.
3. 1991년 발표된 실험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과거 미용실에서 쓰던 헤어드라이어같이 생긴 전기 자극 장치를 머리에 썼는데
연구자로부터 그 장치로 인해 두통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참가자 절반 이상이 장치를 작동시키자 통증을 느꼈으며,
강도를 세게 할 수록 더 강한 통증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실제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장치였습니다.
그들의 통증은 실제 말초자극과는 상관 없이 환경적 단서에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사례들은 특이하고 뉴스에 나올 법한 사례들은 아닙니다.
우리도 비슷한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경험하곤 합니다.
옷을 갈아입다가 언제 생긴지 모르는 멍을 발견하는 상황도 비슷한 예이며,
괜히 모기가 물린 곳을 발견한 후부터 간지러움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사람은 통증에 대해 의미부여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통증의 정도를 다르게 느끼기도 하며,
성별이나 집중 정도, 과거의 경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정도 등에 따라 통증의 정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통증을 고려할 때 한 가지 원인만을 가지고
통증의 이유를 찾는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령, 단순히 디스크 때문에 허리가 아프니 디스크가
재발하지 않도록 수술해야 한다 생각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병리학적 문제가 꼭 통증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며,
디스크와 회전근개 등의 문제가 꼭 수술을 해야 되는 문제가 아닌 이유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 설명드리겠습니다!
1. Fisher, J. P., D. T. Hassan, and N. O’Connor. "Minerva (Emergency Department Case Study)." BMJ (1995).
2. 2005 미국 연합통신 기사
3. Bayer, Timothy L., Paul E. Baer, and Charles Early. "Situational and psychophysiological factors in psychologically induced pain." Pain 44.1 (1991):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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